북미 회담 어디로 가고 있나?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 이정철 교수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 모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두고 드러나는 여러 정황과 북미 양국의 공식 반응을 종합해보면 회담 결렬이라기보다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의 입장에 근거해 해석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01 결렬이 아니라 합의 불발로 봐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반응이 나온 것은 3월 1일 오전이다.
“조미 수뇌분들께서는 두 번째로 되는 하노이에서의 상봉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되었다고 평가하시였다….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시였다.”
물론 북한은 동 성명이 나오기 직전 심야 기자회견 방식을 빌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반응에 조미거래 의욕 잃지 않았나 느낀다.”(최선희 외무성 부상)라고 하며 부정적 반응을 먼저 전달했다. 최고 존엄으로서 김정은 위원장이 실패한 회담을 할 수는 없다는 북한 내부 논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 보게 될 조선중앙통신의 성명보다는 최선희 부상의 성명이 오히려 북한의 진심이 아닌가하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정말 회담이 실패하고 결렬된 것이었다면 북한은 장시간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다. 회담 결렬에 대해 여러 관료집단들 간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정중동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북한 체제의 지금까지 관행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예상을 뒤엎고 재빨리 정리되어 발표된 조선중앙통신의 공식 성명이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더욱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간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회담 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굉장히 좋았다. 우호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일어서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호적으로 마무리했다. 악수도 했고 서로 간 따뜻함이 있었다. 이런 따뜻함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굉장히 특별한 것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회담 재개 여부를) 지금 말하긴 어렵다. 조만간 열릴 수도 있다…. 조만간 이뤄지기를 바란다. 사실 오늘도 거래를 할 수 있었지만, 했다면 내가 전적으로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다…. 김 위원장과 더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서 내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그들도 그들의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양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묻어났듯이 “뭔가 특별한 것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북미정상회담의 재개는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 특정한 이벤트로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오히려 이번 회담이 전화위복이 될 여지를 남겨두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스몰딜(small deal)보다는 노딜(no deal)이 노딜보다는 빅딜(big deal)이 더 좋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빚어낸 이런 결과가 도리어 새옹지마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꿈을 가져보면 어떨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본다면, 이번 회담의 대립 지점은 북한과 미국이 사전에 서로 합의한 최소한의 내용에 서명하고 단계적으로 논의를 확대해가는 스몰딜이냐 아니면, +α 즉 북한 측에 따르면 미국이 “시종일관 한 가지를 더 요구”하였다는 그 무엇인가를 추가로 합의하는 빅딜이냐를 둘러싼 논란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용호 외무상에 따르면 미국이 부분적 제재 해제(2016년 이후 5개 제재 중 민수용을 대상으로 한 제재의 해제)를 단행한다면 북한은 영변 지역 전체의 핵시설, 즉 플루토늄과 우라늄 시설 전체를 폐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런 협상안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측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영변 핵 시설 해체론이 너무 오래전부터 회자된 탓인지 몰라도 미국 내 여론은 그 정도의 협상은 스몰딜로 간주하는 것이 지배적 분위기였다. 특히 부분적일지라도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을 해체하다는 북한의 주장이 불신에 가득 찬 미국 측에게는 이상하게 들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빅딜의 정의와 관련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기자회견 장에서 미사일 시설과 핵탄두 무기 시스템 그리고 핵 목록 신고 등을 추가로 거론하여 이들 전부 혹은 일부를 포함해야 빅딜이라고 본다는 인상을 남겼다.
북한이 스몰딜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확장을 주장하였다면, 포괄적 합의에 따른 원샷 딜에 가까운 입장을 고수해 온 미국 간 대립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리용호 외무상이 말한 미국 측이 요구한 “시종일관 한 가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은 기존의 포괄적 요구 사항을 대폭 축소하여 한 가지 요구 사항으로 줄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양측이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 제1차 북미정상회담(’18.6.12.) 당시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역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단계적 협상안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대사변일 정도로 이전의 태도는 완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단계의 합의 수준을 영변에 국한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데서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스몰딜을 배드딜(Bad deal, 나쁜 협상)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국내 정치 분위기를 트럼프 대통령이 극복하지 못했고, 미국의 정보 능력을 얕잡아 본 북한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03 한국 정부의 역할
이제 이 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과거를 보고 누가 미래를 보는가하는 점이다. 의도의 해석이라는 음모에 가득찬 시각으로 과거를 묻는 진실게임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그런 시각이 어렵게 마련된 협상안을 스몰딜로, 심지어는 나쁜 협상으로 내몰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상황을 만들었다. 설령 과거의 그림자에 묻혀 있더라도 빛을 찾아 가는 길은 하나의 작은 걸음으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협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한 시선을 유지한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사방에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들도 있고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 길을,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 깨버리고 극복하고 해서 다시 마주 걸어서 260일 만에 여기 하노이까지 걸어왔다”
하노이 정상회담장에 던져진 김정은 위원장의 이 말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어렵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리는 빈 터에서 시작하였다”며 고립감(siege mentality) 속에 살아온 그들이 세계를 향해 뻗은 두 팔을 잡아줄 사람이 없다면 한반도는 다시 긴장과 위기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도 협상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있었던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습니다….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나아가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입니다.”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식으로 표명했다. 바로 중재자로서의 역할이었다.
한동안 침묵과 긴장이 감돌겠지만 곧 다시 대화와 협상의 시기기 돌아올 것이다. 그 때 또 다시 스몰딜이다, 혹은 빅딜이다 하는 편협한 시각으로 소중하게 마련된 협상안을 폄훼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소중한 시간을 맞대어 만들어 낸 고민의 결과를 하나의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에게는 작은 협상이고 누구에게는 큰 협상이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평화를 향한 외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주고받을지 고민하는 냉철한 국가 이성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소위 결정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저할 때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획을 긋는 전환은 진정성 어린 성찰에 기반을 둔 담대한 이성이 절박한 결단으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 그것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연설에서 결기가 느껴지는 것은 2017년 평화를 위협당해 본 우리 모두가 느낀 그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을 돌린 두 상대를 한 자리에 끌어 모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은 우리 앞마당에서 열려야 한다. 장년 판문점이 남북 회담의 서막을 열었듯이 2019년 판문점이 북미 회담의 새로운 길을 열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00주년 3.1절 기념식 연설문의 또 다른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평화는 너무 멀리 있어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가 왔을 때 뛰어나가 평화를 붙잡았습니다. 드디어 평창의 추위 속에서 평화의 봄은 찾아왔습니다.”
